4편 「PHOENIX OR PHANTOM」 속편 · 계약은 더 커졌다. 그리고 그 계약이 담보가 되기 시작했다
구조의 미학인가, 거품의 시작인가
[들어가며]
지난주 코스피는 사흘 연속 밀리며 17%가 증발했다. 7월 28일 장중 8% 하락 시점에 올해 여덟 번째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뒤 10.84% 하락한 6,023.63으로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13.4%, SK하이닉스는 14.7% 급락했으며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5조원을 순매도했다. 29일 5.98%, 30일 1.23%가 더해졌다. 시장이 직접적인 촉매로 읽은 뉴스는 두 갈래였다. 하나는 중국발 공급 뉴스로, CXMT의 상장 흥행과 중국산 심자외선 노광장비 진전 보도다. 다른 하나는 미국발 신용 뉴스로, NVIDIA가 OpenAI의 오하이오 데이터센터 캠퍼스에 딸린 리스와 건설금융 약 2,500억 달러를 보증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였다. 여기에 AI 설비투자가 지속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높아진 밸류에이션 부담이 겹쳤다.
그리고 31일, 코스피는 사상 최대 상승률인 17.91%를 기록하며 사흘 낙폭의 대부분을 하루 만에 회복했다. 계약의 내용은 그사이 한 줄도 바뀌지 않았고, 아래에서 살필 위험 신호도 하나 사라지지 않았다. 나흘 동안 다시 매겨진 것은 계약의 유효성이 아니라 계약형 사업에 붙던 배수와 위험 프리미엄이었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배수가 아니라, 배수 아래에서 90일 동안 조용히 바뀐 자금의 구조다.
4편 「PHOENIX OR PHANTOM」은 철도에서 닷컴까지 역사상 모든 거품의 결정적 조건이 '검증 불가능한 회수'였는데 이번 사이클은 회수가 이미 계약되어 있어 그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문장으로 닫았다. 당시 확인 가능했던 주요 클라우드의 수주잔고(backlog) 합산치는 약 1.1조 달러였고, 알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분기가 지났다. backlog는 줄지 않았다. 이후 대형 계약과 각사의 최신 공시가 더해지면서, 기준일이 서로 다른 최근 공개치를 단순 합산한 규모는 2조 달러를 웃돈다. 6월에는 메모리까지 계약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변한 것은 계약의 크기가 아니라 계약의 용도다. 지난 90일 동안 시장은 계약이 진짜인지 묻는 대신, 계약을 담보로 쓰기 시작했다.
고릴라PE는 지난 90일의 자금 구조를 그림 속의 그림으로 읽는다. 담보를 열면 다른 계약의 담보가 나오고, 다시 열면 또 나오는, 액자 안에 같은 액자가 반복되는 구조다. 겹겹의 구조가 정교한 신용 공학의 산물인지, 거품이 시작되는 자리인지가 이 글의 질문이다. 장의 순서는 금강경에서 빌린다. 금강경은 마지막 사구게에서 인연과 조건으로 생겨난 모든 현상을 꿈·환영·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의 여섯에 비유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이 글은 여섯 비유 가운데 앞의 네 글자, 夢幻泡影을 장의 구조로 빌린다. 그리고 경전은 "헛되다"는 단순한 판정이 아니라 관찰의 명령으로 끝난다. 應作如是觀,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 담보 위에 담보가 쌓이는 구조(夢), 순환이 지분에서 부채로 진화한 기록(幻), 거품 판별표의 갱신(泡), 헤드라인 숫자에 잡히지 않는 약정의 크기(影), 그리고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가(如是觀).
시작 전에 용어 하나를 정의한다. 이 글에서 '담보'는 법률상 담보권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산, 계약상 현금흐름, 보증, 예치금처럼 대주가 상환 가능성을 평가할 때 의존하는 신용 보강 장치 전체를 통칭한다.
[01. 夢 — 신용의 중첩, 담보의 담보]
이번 사이클에서 구속력이 가장 강한 계약부터 본다.
6월 24일, 마이크론은 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전략고객계약(SCA·Strategic Customer Agreement) 16건의 체결을 공개했다. 계약 기간은 기본 5년(자동차용은 3년), 2026년부터 2030년까지다. 16건 중 14건의 최소가격·최소물량 기준 잔여계약의무(RPO)는 약 1,000억 달러이고, 여기에 예치금과 금융약정 약 220억 달러가 붙는다. 이 중 현금 예치 약 180억 달러는 계약 이행을 보강하는 장치로, 계약 후반부에 고객에게 순차 반환된다. 계약은 물량을 실제로 안 사가도 대금은 지급하는 take-or-pay 방식의 구속력 있는 물량 약정을 기본으로 하며, 대형 계약 대부분에는 가격 하한과 상한이 들어가고 일부는 고정가격 또는 시장연동 구조다. 커버리지는 마이크론 DRAM 판매의 약 20%, NAND의 약 3분의 1이다. 과거 슈퍼사이클의 장기공급계약이 1년 단위에 취소 가능한 구속력 약한 문서였다면, 이번 계약은 메모리 산업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구속력이 강하다. 그리고 7월 29일 SK하이닉스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개 고객과 장기공급계약 협상을 마무리했으며, 계약에 중장기 물량에 대한 구매 약정과 함께 예치금 등 이행력과 수요 가시성을 높이는 장치를 포함했다고 밝혔다. 계약형 전환은 마이크론 한 곳의 실험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이 됐다.
여기까지가 첫 번째 액자다. 취소하기 어려운 장기계약, 이번 사이클이 1996년과 다르다는 가장 강한 물증이다. 1996년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PC 수요와 동시다발적 증설이 충돌한 현대 D램 슈퍼사이클 붕괴의 대표적 원형이기 때문이다. 당시 D램 가격은 1년 사이 80% 넘게 무너졌는데, 붕괴의 조건은 단순했다. PC 수요를 낙관한 증설이 동시에 완공됐으나 쏟아진 물량을 받아줄 약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기 구매약정이 약한 현물 중심 구조에서는 수요가 반 발짝만 늦어도 재고 증가가 곧바로 가격으로 전이됐다. 이번 사이클이 그 원형과 갈라지는 지점이 바로 계약이다. 계약된 물량에는 팔리기 전부터 대금의 하한이 서명돼 있다.
그런데 액자를 열면 질문이 하나 나온다. 계약서의 지불은 누가 보증하는가. 서명자는 대형 데이터센터 고객을 포함한 전략 고객들이고, 그중 데이터센터 계약의 지불 능력은 결국 하이퍼스케일러와 AI 수요자의 대차대조표에 연결된다. take-or-pay의 담보는 결국 서명자의 재무다.
두 번째 액자를 열자. 하이퍼스케일러의 지불 능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각자의 수주잔고다. Microsoft·Google·AWS·Oracle의 최근 RPO·backlog는 각사의 정의와 기준일이 서로 달라 동일한 회계 항목의 정밀한 합산은 아니지만, 계약 규모를 가늠하기 위해 단순 합산하면 2조 달러를 웃돈다. 그런데 The Information 보도를 Reuters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 가운데 OpenAI와 Anthropic 관련 계약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잉여현금흐름 적자가 큰 두 AI 랩이다.
세 번째 액자를 열자. 그렇다면 두 랩의 지불 능력은 무엇이 뒷받침하는가. 여기서 액자의 재질이 바뀐다. 두 회사 모두 공개된 투자등급 발행자 신용등급이 없다. 그래서 네 번째 액자가 등장했다. 7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NVIDIA는 OpenAI의 오하이오 10GW·약 5,000억 달러 캠퍼스에 딸린 리스와 건설금융 약 2,500억 달러를 보증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최대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칩 금융 논의는 별개이며, 협의는 무산될 수 있다고 같은 보도가 명시한다). 벤더의 대차대조표가 고객의 신용이 되는 구조다.
[차트 1] 담보의 담보 — 액자식 4층 구조도. 바깥에서 안으로: 메모리 장기공급계약(SCA) 최소 RPO 약 $100B(반환 조건부 현금예치 $18B) ← 클라우드 backlog 합산 2조 달러 이상 ← 두 랩 관련 계약 절반 이상(보도 추정, 공개 신용등급 없음) ← 벤더 보증 협의 약 $250B
층을 하나 내려갈 때마다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이 지불은 누가 보증하는가." 그리고 층이 깊어질수록 담보의 성질이 변한다. 바깥 액자의 담보는 현금과 계약이다. 가장 안쪽 액자의 담보는 자산이 아니라 약속이다.
백거이는 참선 경전을 읽고 이렇게 썼다. 夢中說夢兩重虛, 꿈속에서 꿈을 말하니 두 겹으로 허하다. 담보 위의 담보는 구조의 미학인가, 거품의 시작인가. 판정을 서두르기 전에 겹겹의 담보가 어떻게 쌓였는지 90일의 기록부터 보기로 한다.
[02. 幻 — 지분에서 부채로, 90일의 기록]
먼저 원인이다. 별고 「K3의 출사표…시장은 절반만 읽었다」에서 다뤘듯, 프론티어 모델을 한 번 학습시키는 비용은 2020년 약 200만~400만 달러에서 2026~27년 10억 달러 이상으로, 7년 사이 약 500배 무거워졌고, 캠퍼스는 이제 10GW·수천억 달러 단위로 설계된다. 천장에 도전하는 비용이 곱셈적으로 불어나는 국면에서, 자금 수요가 지분(equity) 조달 능력을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부터 자금은 부채와 보증과 담보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4편이 그린 순환 고리가 지분과 매출의 순환, 곧 투자자가 랩에 자본을 넣고 랩이 투자자 소유·연계 클라우드에 지불하는 구조였다면, 지난 90일의 순환은 신용의 순환이다.
시간순으로 네 단계다.
[표 1] 순환의 부채화 — 90일 4단 타임라인
첫째, 담보의 제도화. 2023년 8월 CoreWeave가 H100을 담보로 23억 달러를 빌렸을 때, GPU 담보 대출은 실험이었다. 3년이 지나지 않아 자산군이 됐다. CoreWeave의 총부채는 2024년 80억 달러 미만에서 21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장 후 다섯 분기 동안 지분으로 약 35억 달러를 조달하는 사이 부채는 약 188억 달러 늘었다. 올해 3월의 85억 달러 시설은 HPC 인프라와 관련 고객계약을 담보로 한 금융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투자등급(A3/A (low))을 받았다. 파산격리 SPV가 GPU 자산과 고객계약을 보유하는 비소구(non-recourse) 구조, 고정금리 약 5.9%, 만기 2032년이다. 5월의 31억 달러 시설은 처음으로 공모 신디케이션 시장에 나가 Ba2/BB+ 등급으로 초과청약됐다. GPU와 컴퓨트 계약이 담보 자산군으로 제도화됐고, 그 안에 투자등급부터 하이일드까지 등급의 층위가 생겼다. 다만 같은 회사의 2026년 설비투자 가이던스는 310억~350억 달러로, 같은 해 매출 가이던스 120억~130억 달러의 약 2.5~3배다.
둘째, 지분 담보의 한계. SoftBank는 5월, 보유한 OpenAI 지분을 담보로 마진론 약 100억 달러 조달을 추진했다. 은행들의 반응이 냉담해 목표는 약 60억 달러로 깎였고, 협상은 한때 정체됐다. 은행이 망설인 이유가 이 구조의 핵심을 보여준다. OpenAI는 비상장이라 은행이 담보를 실시간으로 평가하거나 신속히 처분할 수 없다. 3월 라운드의 8,520억 달러 기업가치는 사모 거래의 가격이지 일일 시장가격이 아니다. 같은 SoftBank가 2025년 11월 상장사 Arm 지분을 담보로는 85억 달러를 33개 은행에서 빌렸다는 사실과 견주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7월 들어 협상은 재개됐는데, 조건이 바뀌었다. 지분만 담보로 잡던 원안 대신, SoftBank 본체가 상환보증(소구권)을 추가로 제공하는 구조다. 은행단이 사모 AI 지분만으로는 대규모 대출의 담보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본 공개 신호 중 하나이고, 이 신호는 곧바로 신용평가에 반영됐다. S&P는 Oracle 강등 리포트에서 OpenAI 기업공개 연기와 함께 SoftBank의 담보대출 축소를 위험 요인으로 직접 거론했다.
셋째, 계약 이행이 신용을 소모. 7월 9일 S&P는 Oracle의 장기 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 한 단계 위인 BBB-로 내렸다. 강등의 산식을 뜯어보면 이 글이 말하는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Oracle의 RPO 약 6,380억 달러 중 절반가량이 OpenAI 단일 고객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이행하기 위한 총설비투자가 회계연도 2026년 557억 달러(전년 대비 +162%, 자체 가이던스 초과)에서 2027년 900억~950억 달러로 커진다. 다만 이 총액에는 고객 선급금과 고객이 제공하는 설비가 충당하는 200억~250억 달러가 포함돼 있어, Oracle이 실제로 투입할 순현금은 약 700억 달러다. 회사는 이번 분기부터 '프로젝트 순현금 지출'이라는 지표를 새로 도입해 이 차이를 분리해 공시하기 시작했고, RPO 6,380억 달러 가운데 750억 달러도 선불이거나 고객이 제공한 AI 하드웨어로 분류된다. 계약이 자금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S&P는 2027년 잉여영업현금흐름(FOCF)을 약 마이너스 420억 달러로 전망했고, Oracle은 회계연도 2027년에 부채와 지분으로 약 400억 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다. 계약은 자금 부담을 줄여주지만 없애주지는 않는다. 조정 레버리지는 4배 중반으로 S&P가 설정한 강등 조건을 넘었다. backlog가 커지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backlog가 매출 회수보다 먼저 막대한 선투자를 요구하고 특정 고객에게 집중될수록, 계약은 매출 가시성인 동시에 신용 여력을 소모하는 이행 의무가 된다. 시장의 가격은 등급보다 먼저 움직였다. 7월 중·하순 Oracle의 5년 CDS는 200bp대로 올라서며 장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Oracle의 대응도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부채를 더 내면 추가 강등이라, 2월 50억 달러 전환우선주에 이어 2026년 약 200억 달러 증자를 포함해 지분 조달로 선회했다.
넷째, 신용의 대체. 그리고 7월 26일의 NVIDIA 보도다. 보증의 이유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OpenAI는 공개된 신용등급이 없고, NVIDIA의 대차대조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축에 든다. 대주는 칩 제조사의 신용으로 대출의 금리와 조건을 정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한 선례는 이미 있다. Google이 Anthropic 데이터센터 다섯 곳의 리스 지급을 보증(backstop)해 약 350억 달러의 자금 조달을 가능하게 했다. 시장의 독해가 백미다. 보증 협의 보도가 나온 날, CoreWeave와 Nebius 주가는 올랐다. 벤더 보증이 부실의 신호가 아니라 추가 자금조달 여력이 커진 것으로 읽힌 셈이다.
정리하면 닷컴 시대의 순환거래(round-tripping)는 매출을 부풀렸다. 지금의 순환은 신용을 늘린다. 매출 순환은 손익계산서에 비교적 빠르게 드러나는 반면, 신용 순환은 RPO, 미개시 리스 약정, 보증부채, 비소구 금융, SPV 주석에 분산되어 나타난다. 모두 감사와 공시의 대상이지만, 평시에는 하나의 헤드라인 숫자로 합산되지 않는다. 위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재무제표와 각주 사이에 흩어진다.
[03. 泡 — 판별표의 갱신, 그리고 바닥의 조건]
4편은 거품 판별 다섯 기준, 곧 자금원의 질·순환의 성격·수요의 실재·회수 가시성·잔존 가치로 이번 사이클을 채점했다. 90일 뒤의 채점표는 두 칸이 움직였다.
[표 2] 거품 판별표 갱신 — 기준 4는 강해졌고, 기준 1이 약해졌다
먼저 기준 4가 왜 강해졌는지 숫자로 보자. 회수가 계약으로 묶이는 흐름은 클라우드를 넘어 메모리까지 내려왔다. 마이크론 SCA와 SK하이닉스의 장기계약 확대는 팹을 짓기 전에 수요 리스크의 일부를 구매자에게 파는 구조 전환이다. 반대로 그 구매자들의 재무 부담은 기준 1을 악화시켰다. 파이낸셜타임스 집계로 4대 하이퍼스케일러의 2026년 설비투자는 약 7,250억 달러로, 2025년 약 4,100억 달러 대비 77% 증가로, 기술 산업 역사상 최대의 단일 연도 인프라 사이클이다. UBS 계산으로 2026년 하이퍼스케일러 설비투자는 영업현금흐름의 100%에 육박한다. 지난 10년 평균은 40%였다. 벌어진 간극을 채권시장이 메우기 시작했다. Bank of America 집계로 Amazon·Alphabet·Meta·Microsoft·Oracle 5개사의 미국 회사채 발행은 2020~2024년 연평균 280억 달러에서 2025년 1,210억 달러로 뛰었고, Morgan Stanley는 2026년 전 세계 AI 관련 부채 발행을 전년의 두 배 이상인 약 5,700억 달러로 전망한다(5월 말까지 이미 약 2,360억 달러, 전년 동기의 네 배). M&G 집계 기준 AI 연계 부채 총액은 이미 1.2조 달러를 넘어 투자등급 시장에서 미국 은행을 제치고 최대 섹터가 됐다.
계약서의 무게는 잉크가 아니라 서명자의 신용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신용 자체가 계약 이행을 위한 설비투자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첫 대형 사례가 Oracle이다. 회수 가시성을 높이는 계약이 곧 자금원의 질을 낮추는 이행 의무가 되는 구조. 泡의 채점표에서 기준 1과 기준 4는 이제 독립 변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바닥은 있는가. 고릴라PE는 메모리 게이트에 한정해 "있다, 다만 조건부"로 판단한다. 세 가지 근거와 각각의 한계다.
우선 메모리 가격의 정석부터. 메모리 가격은 수요의 절대 크기가 아니라 수요 증가율과 공급 증가율의 차이가 정한다. TrendForce가 2021년 말 제시한 2022년 전망에서는 D램 비트 수요 증가율 17.1%, 공급 증가율 18.6%, 연평균 가격 하락률 약 15%가 예상됐다. 수요가 두 자릿수로 늘어도 공급이 더 빠르면 가격은 하락한다는 메모리 산업의 기본 수학이다. AI 수요의 절대 규모는 그 자체로 논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계약이 등장했다.
첫째 근거는 계약의 바닥이다. take-or-pay와 가격 하한은, 계약 상대방이 이행한다는 전제 아래, 계약된 물량의 매출과 마진 하방을 크게 줄인다. 정확히 읽어야 한다. 계약이 만드는 것은 회사 전체 이익의 절대적 바닥이 아니라, 계약된 일부 물량의 가시성과 하방 안정성이다(마이크론 기준 DRAM 약 20%, NAND 약 3분의 1). 그리고 가격밴드가 있는 대형 계약에 한해, 상한을 묶은 계약은 상방을 판 것이고 그 대가로 바닥을 산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공급 3사의 베팅이 갈린다. 마이크론은 대형 계약 대부분에 하한과 상한을 함께 넣었다. SK하이닉스는 7월 29일 콘퍼런스콜에서 "실적의 하방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이 우호적일 때 추가 수요와 성장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언급했다. 상방을 지키는 설계다. 계약형 인프라의 정직한 밸류에이션 비교 대상은 성장주가 아니라 장기 용선계약을 낀 해운사다. 운임이 폭락해도 죽지 않고, 폭등해도 그만큼 못 버는 구조에 시장이 매기는 배수는 성장주의 배수가 아니다.
둘째 근거는 HBM이 만든 공급 밸브다. HBM은 범용 D램보다 약 3~4배 높은 웨이퍼 집약도를 갖는다(TechInsights·TrendForce 추정. 세대가 올라갈수록 집약도는 높아진다). TrendForce는 상위 3사의 전체 D램 웨이퍼 투입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5년 말 18%, 2026년 말 22%, 2027년 말 30%로 추정한다. AI 수요 증가가 범용 공급 감소를 낳는 구조, 1996년에는 없던 밸브다. 다만 밸브는 양방향으로 열린다. HBM용 웨이퍼 투입을 범용으로 재배치하면 웨이퍼당 출하 가능한 비트가 크게 늘어나는 역레버리지가 발생한다. 노드·제품 인증·라인 전환의 마찰 때문에 즉시 전환되는 스위치는 아니지만, 전환 압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TrendForce는 범용 DDR5 64GB 서버 모듈의 웨이퍼당 수익성이 2026년 1분기 HBM을 앞섰다고 분석했다. 7월 29일 SK하이닉스의 HBM4 양산 확대 발표는 밸브가 아직 HBM 쪽으로 열려 있다는 최근의 직접적인 신호다. 이 방향이 꺾이는 순간이 바닥 논리의 첫 균열이 된다.
셋째 근거는 수요의 탄력성이다. 토큰 수요는 가격이 내리면 소비가 그 이상으로 늘어나는 초탄력 구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 모델의 시뮬레이션은 특정 가정 아래 수요 탄력성 1.42를 제시하고(Zhang·Zhang, arXiv 2601.12339. 가격 50% 하락 충격을 넣은 모형 실험값이다). 관측 데이터도 방향은 같아서, 토큰 가격은 장기적으로 90% 이상 하락했지만 총지출은 최근 오히려 두 배가 됐다. 다만 두 시계열의 기준 기간이 다르므로 이를 결합해 하나의 실측 탄력성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그리고 토큰의 탄력성이 곧 D램 비트의 탄력성은 아니다. 토큰 가격 하락의 상당 부분은 알고리즘 효율과 하드웨어 세대교체에서 오고, 비트를 사는 주체는 토큰 소비자가 아니라 하이퍼스케일러이며, 그들의 비트 수요는 설비투자 예산에 묶여 있다. 탄력성은 다음 하강의 바닥을 얕게 만들 수는 있어도, 하강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
결국 1996년(계약 없음), 2001년(계약은 있었으나 상대방이 파산한 광케이블), 2026년(취소하기 어려운 계약이 있고 서명자는 신용 최상위 기업들)의 구도에서 이번 사이클의 바닥은 실재한다. 다만 서명자들이 이미 부채 시장에 들어섰고, 이들의 backlog 절반가량은 다시 두 랩의 약속에 기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은 있으되, 그 바닥을 받치는 담보가 위층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泡의 질문은 이렇게 夢의 구조로 되돌아간다.
[04. 影 — 그림자 신용, 그리고 비대칭]
그림자부터 계량하자. 대차대조표에 바로 잡히는 부채 밖에도 대규모 구매·용량 약정과 아직 개시되지 않은 미래 리스 약정이 존재한다. Bloomberg가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공시를 집계한 결과, 미래 데이터센터 리스 약정은 8,5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리스가 개시되기 전에는 통상 대차대조표의 리스부채로 인식되지 않지만, 공시상 약정으로는 존재하는 금액이다. CoreWeave의 파산격리 SPV는 대주의 법적 소구 범위를 특정 GPU 자산과 고객계약으로 격리한다. 다만 법적 비소구성과 회계상 연결 여부는 별개로, 해당 차입은 자회사 차입으로 연결재무제표에 공시된다. NVIDIA의 보증이 실제 체결되면 미국 회계기준상 다수의 보증은 최초에 보증의 공정가치를 부채로 인식하며, 우발약정으로 공시된다. 요컨대 위험이 숨는 것이 아니다. RPO, 미개시 리스, 보증부채, SPV 주석으로 흩어져, 평시에는 하나의 숫자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影, 그림자 신용이다.
그리고 그림자는 균일하지 않다. 지난 90일에서 가장 중요한 관찰은, frontier를 향한 자금 사슬이 두 축으로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신용 공학은 두 축 모두에 존재한다. 형태와 집중도가 다를 뿐이다.
Anthropic 축은 빠른 매출 성장 위에 파트너 금융이 결합된 구조다. 연 환산 매출은 5월 회사 발표 기준 약 470억 달러이고, 대체데이터 업체들은 7월 연 환산 매출을 약 690억~740억 달러로 추정한다. 회사 발표와 대체데이터는 집계 방식이 달라, 절대값보다 방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봐야 한다. 그 위에 보도 기준으로 Google Cloud와의 5년 약 2,000억 달러 지출 약정, Google의 데이터센터 리스 지급보증과 그에 기반한 약 350억 달러 금융, Broadcom의 칩 잔존가치 지원이 결합돼 있다. 매출 격차가 천장 능력만의 결과는 아니다. 유통, 영업, 클라우드 파트너십, 공급능력도 반영된다. 다만 높은 신뢰성이 제품화·유통력과 결합될 때 실제 기업 지출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한 신호이고, 별고의 결론과도 맞닿아 있다. 시장이 값을 치르는 함수는 평균이 아니라 천장이다. 각 단계가 독립적이고 성공률이 같다는 단순화된 가정 아래, 100단계 업무에서 단계 성공률 99%와 99.9%의 차이는 완주율 37%와 90%의 차이가 된다.
OpenAI 축은 사슬이 더 길고 집중도가 높다. Oracle RPO의 절반가량이 이 한 회사로 추정되고, SoftBank의 대출은 소구권이 추가된 구조로 재협상되고 있으며, NVIDIA의 초대형 보증 협의가 그 위에 얹힌다. OpenAI의 매출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회사가 계획하는 2030년까지의 누적 컴퓨트 지출은 7월 22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 기준 약 7,500억 달러로, 올해 초 제시된 약 6,000억 달러에서 석 달 만에 25% 상향됐다. 현재 매출만으로는 선투자 전체를 충당하기 어렵고, 이 간극이 보증과 리스와 파트너 금융의 필요성을 만든다.
정리하면 수요의 검증은 Anthropic 축에서 더 빠르게 나타났고, 신용 사슬의 집중은 OpenAI 축에서 더 깊게 나타났다. 프론티어 생태계 전체를 한 덩어리로 묶어 보는 것은 이제 정확하지 않다.
이 구조를 놓고 보면 붕괴 경로도 더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4편은 "터진다면 LLM 순환자금이 먼저, 네오클라우드가 다음"이라고 썼다. 90일의 기록은 그 경로에 이름과 순서를 붙인다. 알이 깨진다면 방아쇠는 수요의 소멸이 아니라 신용 사건일 가능성이 높고, 충격은 부채가 쌓인 역순으로 번질 것이다. 비소구 시설의 대주(격리가 실제로 격리하는지의 첫 시험), 네오클라우드의 차환, Oracle의 스프레드, 벤더 보증의 실행, 그리고 마지막에 메모리 장기계약의 상대방 리스크. 담보 사슬은 평시에는 바닥을 깔고, 위기에는 전파 경로가 된다.
[05. 如是觀 — 이와 같이 보라]
금강경 게송의 끝은 판정이 아니라 관찰 명령이다. 應作如是觀,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 거품이라 단정하는 것도,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도 이 자세가 아니다. 고릴라PE가 보는 관찰 지표는 여섯이다.
[표 3] 여시관 대시보드 — 여섯 개의 관찰 지표 (각 값에 기준일과 공식/추정 여부 병기)
앞의 다섯 가운데 셋(①②⑤)은 실물이 담보를 채우는 속도를 재고, 둘(③④)은 담보가 실물보다 빨리 자라는 속도를 잰다. 여섯 번째는 담보 사슬의 지표가 아니라 외생 변수다. CXMT의 수율과 규제 경로는 메모리 게이트의 희소성이 유지되는지를 잰다. 담보의 성장 속도가 실물의 성장 속도를 계속 앞지르면 액자는 한 겹씩 더 늘어날 것이고, 실물이 따라잡으면 액자는 안쪽부터 현금으로 채워질 것이다.
지난주의 마지막 사흘은 이 대시보드가 이미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자연 실험이었다. 7월 29일 SK하이닉스는 역대 최대 실적과 장기공급계약 확대를 발표하고도 주가가 급락했고, 30일 삼성전자 역시 사상 최대 영업이익과 대형 데이터센터 고객과의 장기계약을 공개했으나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했다. 같은 날 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매출 급증과 기존 설비투자 계획 유지를 함께 내놓아 급등한 반면, 메타는 설비투자 가이던스를 올리면서 회수 시점을 제시하지 못해 급락했다. 그리고 31일, 두 종목은 각각 상한가(SK하이닉스 29.95%)와 상장 이래 최대 상승률(삼성전자 26.81%)로 마감하며 코스피를 사상 최대 상승률인 17.91% 끌어올렸다. 반등의 주요 촉매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은 국내 계약의 갱신이 아니라, 전날 밤 마이크로소프트가 보여준 AI 투자의 회수 경로였다.
나흘 동안 계약의 내용은 한 줄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것은 같은 계약에 붙는 배수와 위험 프리미엄이었다. 두 대륙에서 다섯 회사가 받은 판정의 방향은 제각각이었으나 기준은 하나였다. 시장이 물은 것은 수요가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그 수요를 충족하려고 투자한 뒤 무엇이 남는가였다. 지출의 크기가 신뢰의 증거로 읽히던 국면은 끝났고, 지출의 회수 가능성이 가격을 정하는 국면이 시작됐다. 이는 시장의 계기판이 주가에서 신용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되돌린 것은 사흘의 낙폭이지 사이클 전체가 아니다. 31일 종가 기준으로도 삼성전자는 6월 고점 대비 약 28%, SK하이닉스는 약 41% 낮은 자리에 있다.
[마치며]
4편은 "알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로 닫았다. 90일이 지났고, 알은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다만 그 아래에 담보가 몇 겹 더 쌓였고, 그 층의 가장 깊은 곳에는 자산 대신 약속이 놓였다.
그러니 경보의 조건을 정확히 적어두자. 벤더의 보증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는 경보가 아니다. 그것은 계약된 수요를 자금조달이 가능한 설비로 바꾸는 신용공학이기도 하다. 경보는 보증 없이는 자금이 돌지 않게 될 때, 보증의 가격과 소구 조건이 계속 나빠질 때, take-or-pay 계약이 취소되거나 재협상될 때, 그리고 랩의 매출이 약정한 컴퓨트 지출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할 때 울린다.
계약은 이번 사이클이 과거의 거품과 다르다는 가장 강한 물증이다. 동시에 계약은, 지난 90일이 보여줬듯, 부채의 원료다. 같은 계약이 수요의 물증이면서 부채의 원료가 되는 구조, 구조의 미학과 거품의 시작은 같은 그림의 두 이름이다. 꿈인지 현실인지는 팽이가 멈춰 봐야 안다.
팽이는 아직 돌고 있다.
이용권 · 고릴라PE 파트너 · 2026.07
Beyond Scaling Series — 01 BEAR AND FEAR(공급) · 02 SCALE UNSEALED(데이터) · 03 CAUSAL NOT CASUAL(인식론) · 04 PHOENIX OR PHANTOM(자금 구조) · **05 DREAM WITHIN A DREAM(담보의 담보)** · 06 BARELY BEGUN(최종 수요 — 예고)
주요 출처
Micron FQ3 2026 실적 발표·콘퍼런스콜 (2026.06.24. SCA 16건, 14건 최소기준 RPO 약 $100B, 예치금·금융약정 약 $22B 중 현금 약 $18B·반환 조건부) · SK하이닉스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콘퍼런스콜 (2026.07.29, LTA 관련 답변: "중장기 물량에 대한 고객의 구매 약정과 함께 예치금 등 계약 이행력과 수요 가시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 Wall Street Journal (NVIDIA-OpenAI 보증 협의, 2026.07.26) · S&P Global Ratings, "Oracle Corp. Downgraded To 'BBB-/A-3' From 'BBB/A-2'" (2026.07.09) · Oracle FY2026 4분기 실적 발표·콘퍼런스콜 (2026.06.10, FY2027 총설비투자 $90~95B·순현금 지출 약 $70B·고객 선급금 및 시점 효과 $20~25B) · Bloomberg·Reuters (SoftBank 마진론 경과, 2026.05~07) · CoreWeave 공시·IR (DDTL $8.5B A3 비소구·$3.1B Ba2/BB+, 10-Q 연결 공시, 2026.03/05) · Financial Times 집계 (Big-4 2026 capex 약 $725B) · Reuters/The Information (주요 클라우드 backlog 중 OpenAI·Anthropic 비중 절반 이상 추정; Anthropic-Google Cloud 약 $200B 약정, 2026.05) · Morgan Stanley via Reuters (2026 AI 관련 부채 발행 약 $570B 전망·5월 말 $236B, 2026.06.10) · Bank of America (5사 회사채 발행 '25년 $121B vs '20~'24 연평균 $28B) · UBS (2026 capex ≈ OCF 100% vs 10년 평균 40%) · M&G Investments (AI 연계 부채 $1.2T, IG 최대 섹터) · Bloomberg 집계 (미래 데이터센터 리스 약정 $850B 초과) · TechInsights·TrendForce (HBM 웨이퍼 집약도 약 3~4배; HBM 웨이퍼 비중 18%('25말)→22%('26말)→30%('27말); DDR5 64GB RDIMM 웨이퍼당 수익성 '26.1Q HBM 상회) · TrendForce (2021.11, 2022년 D램 수급 전망 17.1%/18.6%) · Zhang & Zhang, arXiv:2601.12339 (토큰 수요 탄력성 시뮬레이션) · Wall Street Journal (OpenAI 2030년까지 누적 컴퓨트 지출 약 $750B로 상향, 2026.07.22) · Anthropic 회사 발표 기준 연 환산 매출 (2026.05) · Yipit·TickerTrends 트래킹 (2026.07, 추정) · 한국경제 (2026.07.28 코스피 종가) · 고릴라PE Insights 「K3의 출사표…시장은 절반만 읽었다」 (2026.07.30) · 이용권, 「'키미 K3'의 출사표…시장은 절반만 읽었다」, 머니투데이방송, 2026.07.30 (https://news.mtn.co.kr/news-detail/2026073015201823278)